니콜라스 브리텔은 현대 영화음악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다. 클래식과 재즈, 힙합 감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문라이트’, ‘퍼커션’, ‘돈 룩 업’ 등 감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담은 작품들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글에서는 브리텔이 어떻게 영화의 정서를 음악으로 번역해 내는지, 그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문라이트: 감정을 정제한 피아노의 언어
니콜라스 브리텔의 대표작 ‘문라이트(Moonlight, 2016)’는 그를 세계적 작곡가로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이다. 배리 젠킨스 감독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영화는 한 흑인 청년의 성장기를 조용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내며, 브리텔의 음악은 그 섬세한 정서를 완벽히 뒷받침했다.
문라이트의 사운드트랙은 전반적으로 피아노와 현악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대표곡 ‘Little’s Theme’은 단순한 멜로디 반복을 통해 내면의 외로움과 혼란, 그리고 정체성의 탐색을 표현한다. 브리텔은 이 음악에 힙합 믹싱에서 사용하는 ‘Chopped and Screwed’ 기법을 도입해, 클래식 음악에 의외의 실험성을 부여했다. 느리게 변조된 현악과 잔잔한 피아노가 겹쳐지며, 정제된 감정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은유와 여운으로 전달하는 작곡 방식을 택한다. 이는 관객이 영화 속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데 음악이 과잉되지 않고, 함께 숨 쉬는 감정의 파트너로서 작용하게 한다. 이러한 절제와 깊이는 브리텔 특유의 미니멀리즘적 정체성이며, ‘문라이트’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서커션 : 권력과 탐욕을 고전으로 해석하다
니콜라스 브리텔이 음악을 맡은 HBO 드라마 ‘서커션 (Succession, 2018~2023) ’은 미디어 재벌 가문을 중심으로 한 권력 투쟁을 다룬 작품이다. 브리텔은 이 시리즈에서 고전 음악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인물 간의 긴장과 냉소를 음악으로 압축해 냈다.
퍼커션의 메인 테마는 바로크 스타일의 하프시코드와 스트링을 중심으로 한 구성으로 시작되지만, 중간에 불협화음, 왜곡된 피아노, 디지털 신스 사운드가 들어오며 고전과 현대가 충돌한다. 이처럼 브리텔은 전통적인 음악 형식을 가져와 현대 사회의 혼란과 조작된 윤리를 음악적으로 반영한다.
그의 음악은 각 캐릭터의 심리상태를 반영할 뿐 아니라, 드라마 전체의 구조적 긴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반복되는 테마 안에서 리듬의 약간의 변화, 화성의 불안정성은 권력 내부의 균열과 긴장 상태를 상징한다. 브리텔은 이 작품을 통해 오케스트라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음악 안에 위트와 아이러니, 현대적인 사회 비판을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프라임타임 에미상 음악상에 세 차례 노미네이트되었으며, 클래식 기반 작곡가가 어떻게 사회적 메시지를 풀어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예로 평가받는다.
돈 룩 업: 풍자와 절망 사이의 음악적 균형
2021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Don’t Look Up)’은 기후 위기와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영화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 작품에서 풍자와 절망, 긴장과 허무가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관객의 감정을 유도하기보다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작곡했다. 예를 들어,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긴박한 상황에도 브리텔은 때로는 엉뚱하고 경쾌한 관악기 사운드, 때로는 차분한 현악을 사용해 감정의 반전을 만들어낸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 큰 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블랙코미디 특유의 감정선과 일치한다.
또한 그는 사운드트랙 중 일부를 1970년대 스타일의 팝, 펑크, 디스코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함으로써, 고전적인 영화음악과는 차별화된 구성으로 현대적 위기감을 표현했다. 브리텔의 음악은 이처럼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의 중심 정서를 명확하게 부각하는 동시에 감독의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힘을 지닌다.
감성, 지성, 실험을 아우르는 현대 영화음악의 선두
니콜라스 브리텔은 미니멀한 구성으로도 깊은 감정과 철학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작곡가다. ‘문라이트’에서는 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고, ‘서커션’에서는 권력의 냉혹한 현실을 음악으로 풍자했으며, ‘돈 룩 업’에서는 사회의 위기를 아이러니한 감성으로 담아냈다.
그는 단지 음악을 삽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와 드라마의 정서와 메시지를 확대하는 공동 창작자로 기능한다. 클래식 기반의 작곡 기법에 현대적인 감성과 실험을 더한 그의 음악은 현재 많은 감독들이 그와의 협업을 원하는 이유다.
2024년에는 A24와의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등의 음악 작업이 예정되어 있으며, 그의 영향력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의 음악은 지금 이 시대 영화가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정교한 언어 중 하나다.